인터넷에는 체게바라와 존 레논이 함께 기타를 치는 합성 사진이 돌아 다닌다. 존 레논이 노래 imagine 에서 꿈꾸던 세상과 체가 꿈꾸던 세상이 같은 곳이기를 바라는 이들이 만들어 낸 상상물이다. 1966년 체는 콩고 혁명에 실패하고 볼리비아로 떠나기 전 프라하에 3개월 정도 은거했다. 그는 여기서 ‘비틀즈’라는 시를 쓴다.
마치 망명온 사람처럼
난 프라하의 한 아파트에 은신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테차를 마시며
휴대용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비틀즈의 노래를 듣는다.
저 음표 어딘가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숨어 있으리라
Yesterday….
그란마를 타고 쿠바에 상륙한 날
산타클라라를 점령한 날
그리고 마침내 아바나에 입성한 날
모두 주마등처럼 스친다.
-<체게바라 시집>, 이산하 편역
피델 카스트로는 혁명 이후 비틀즈의 노래를 금지시켰지만 ‘체 동지’는 비틀즈를 즐겨 듣던 낭만적 혁명가였다. 지금 쿠바에는 벽화로, 동상으로 비틀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피델은 존 레논의 사후 20년인 2000년에 그의 동상을 제막하면서 비틀즈 노래를 해금했다. 비틀즈를 좋아하던 체 게바라가 그리워서 였을까? 이례적으로 피델은 제막식에 직접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피델은 “존레논의 생각과 사상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의 꿈을 공유합니다. 나 역시 그가 꿈꾸었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꿈꾸고 있습니다”라고 연설했다.
쿠바는 이처럼 ‘즐거운 혁명’을 아직도 꿈꾸고 있다. 어느 도시든 음악과 춤이 흘러 넘치면서도 그 사이에 혁명 수호와 사회 주의 혁명 승리의 구호도 발견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도 함께 추모된다.
미국과의 수교 후 쿠바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파도를 이겨낼 수 있을까? 밀려 들어오는 관광객과 해외 자본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자본유입으로 인해 당장의 삶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자본의 악마성은 곧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쿠바 인민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지 궁금하다.
일본의 쿠바 전문가 요시다 타로는 쿠바를 ‘몰락 선진국’이라고 부르면서 대량의 소비를 전제로 하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방법 즉 ‘몰락의 힘’이 필요한데 쿠바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쓴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서해문집)
앞의 두 글에서 너무 혁명 이야기만 다룬 것 같아 이제 ‘여행’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현재로는 쿠바 항공이 제일 저렴하고 casa(민박)에 묵으면 하루에 1인당 10 cuc($12)이면 가능하다. 혼자 여행할 경우 방을 공유해야겠지만 두 사람 이상이라면 화장실이 달린 방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까사에서 아침을 먹게 되면 1인당 5 cuc, 미국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는 사람들에게는 비싼 가격이지만 음식은 꽤 푸짐하다. 우리 일행은 아침에 남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점심을 해결하고 이른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관광객이 가는 식당에서는 10 cuc으로도 저녁 메뉴 찾기가 힘들지만 현지인 식당에 들어가면 현지인 화폐인 cup으로 싸게 먹을 수 있다. 특히 거리의 피자가게에서 파는 ‘수제피자'(거창한 것 같지만 그냥 빈대떡 구워 구멍가게에서 판다고 생각하면 된다)도 먹을만하다. cup은 달러에서 직접 환전은 안되고 cuc으로 바꾼 뒤 은행에서 환전해야 한다. cup이 남아 거꾸로 환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행자들이 정보를 얻는 데는 인터넷만한 것이 없는데 쿠바의 인터넷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전화국 앞에 줄을 서서 사용권을 사야 하는데 그것도 와이파이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대형 건물 옆에서 와이파이를 ‘구걸’해야 한다.
흔히들 쿠바에 가면 쿠바를 대표하는 세 가지 칵테일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영화 ‘내부자’로 유명해진 모히토, 노예들이 즐겨 먹었다는 깐찬차라,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다이끼리가 있는데 이 중 다이끼리는 권하고 싶지 않다. 레몬수와 럼을 섞은 얼음 슬러쉬라고 생각하면 된다. 맛이 없다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깐찬차라가 제일 맞았다. 사탕수수와 럼, 레몬과 향신 허브가 들어간 칵테일인데 동동주 잔 같은 그릇에 담아 준다. 깐찬차라는 뜨리니다드 지역에서 주로 즐길 수 있다.
뜨리니다드(Trinidad)
산타 클라라에서 멀지 않은 도시(120km) 뜨리니다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도시로 아름다운 기와 지붕으로 유명하다. 18세기 이후 뜨리니다드는 노예무역과 설탕무역으로 흥하던 도시였다. 그 흔적은 마요르 광장 근처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남아 있다. 마요르 광장의 음악의 신 뮤즈 여신상이 있다. 피델이 혁명을 꿈꾸었던 아바나 대학 입구에도 지혜의 여신상(Alma Mater)이 있다.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신상이 곳곳에서 지역을 대표하고, 성당의 십자가, 예수상도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뜨리니다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안꼰 해변이 있다.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고급 호텔이 즐비한 해변 휴양지다. 우리 일행은 하루 원주민 처럼 놀아보기로 하고 안꼰 해변까지 걸어가기로 했으나 8 km를 채 못가고 4 km 쯤 되는 라보까 해변에서 ‘해수욕’을 했다. 그날 3명이 쓴 돈은 10 cuc 내외. 물론 원주민들에게는 이 금액도 큰 돈이겠지만 우린 원주민 코스프레를 했다고 자축했다. 안꼰을 추천하는 대부분의 여행 안내 책자 저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라보까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씨엔 푸에고스 (Cienfuegos)
씨엔푸에고스의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플로리다 마이애미를 걷는 것 같다. 요트 하우스도 그렇고 해변에 줄지어 있는 레스토랑들, 푸트 코트들은 미국의 여느 도시 못지 않다. 길이 모두 정방형이다 보니 시내버스를 타는 일도 두렵지 않다. 게다가 UMC(연합감리교회) 교회당 건물과 마주치면 정말 미국의 한 도시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곧게 쭉 뻗어 있는 길 옆으로는 파도가 넘실거리고 거리의 악사들이 흥을 돋운다. 특히 이곳의 석양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곳의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한 Black Rice, 우리의 잡곡밥과 똑같다. 쌀을 익힌 정도도 유럽이나 동남아의 쌀밥과 달리 우리 밥 처럼 푹 익혔다.
토마스 테리 극장(Teatro Tomas Terry)은 점령자들이 누리던 문화의 수준을 보여준다. 모자이크 벽화와 천정화, 고풍스러운 의자들이 혁명 전 화려했던, 그러나 침략자들의 것이었던 도시를 흔적으로 담고 있다. 묵던 까사 응접실에 걸린 사진에는 전차와 Sony 네온 사인이 있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에 나오는 혁명 이전의 아바나도 화려하다. 그때를 기억하는 시민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일까? 쿠바 정부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개방이 가져오는 후유증을 염려해야 할 것이다. 요시다 타로의 말처럼 ‘물락 선진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를 쿠바 인민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여행객의 여행기를 검증하면서 시비를 거는 문화가 생겨났다. 어두운 면은 안 봤느니 어쩌니 하면서 종북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들의 시각은 자본주의에 편향되어 있다. 그들의 눈으로 봐서 이상한 것일 뿐인데 자신들의 시각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외눈박이들을 위해서, ‘종쿠바’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나쁜 것도 조금 쓴다.
매연- 아바나의 매연은 정말 심각하다. 지방 도시는 상대적으로 쾌적하다.
생태 환경 – 씨엔푸에고스에서 아바나로 돌아오던 도로에서 족히 수 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게들이 차 바퀴에 압살을 당했다. 5 km정도 되는 구간은 그야말로 학살의 공간이었다. 산란기에 뭍으로 올라오는 게들의 길목에 도로를 건설함으로써 생긴 비극이다. 그나마 차량이 많지 않으니 살아남는 게들이 있지 차량이 많은 나라의 경우라면 한 달 안에 멸종되었을 것이다.
일부 청소년 문제 – 영국에서 발행되는 관광책자에는 청소년 원조 교제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전화기를 사기 위해서 소녀들이 길거리에서 관광객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소녀의 접근을 받고 보니 영국 관광 책자의 경고가 실감났다. (쿠바 여행기 연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