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금기’ 가 되었나?
한국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는 ‘친박’과 ‘친노’다. 여론조사를 보면 역대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노무현과 박정희가 엇비슷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친박은 닿으려는 선이고 친노는 끊으려는 선이다.
친노 문재인이 영입한 더불어 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조중동과 종편의 주문을 받아 친노 청산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이해찬이 직격탄을 정청래가 유탄을 맞았다. 일찌감치 안철수는 친노 청산을 외치며 새 살림을 꾸려 나갔다. 자신의 장례식과 영화 <변호인>에 천만 이상을 모은 ‘노무현’을 버리고 가는 것은 정치 공학적으로 손해일터인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외치는 친노 청산의 실체는 무엇일까?
친노 한명숙이 책임진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얻은 127석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이었다. 문재인은 김종인 영입이란 악수를 두었고 선거 국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가 희미한데도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20%대는 유지한다. 친노의 위력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이런 친노에 위협을 느낀 보수는 한명숙 죽이기에 나섰고 이번에는 이해찬까지 쳐냈다. 보수의 짓거리야 늘 보아오던 일이지만 친노를 금기어로 삼는 야권 진보 세력에는 계급도 철학도 정치 공학도 없어 보인다.
이처럼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떠들어대는 친노 청산의 실체는 무엇일까?
보수 언론
5공 청문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노무현을 키운 것은 언론이 맞다. SNS가 없던 당시 종이 신문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였다. 청문회에서 장세동을 논리적으로 몰아 부치던 노무현은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었지만 언론과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무현은 언론의 눈치를 보지 않는 최초의 정치인이었고 언론 입장에서는 키워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물이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논설위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도 그를 노무현씨라고 지칭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현재 조중동과 종편의 친노 죽이기는 이 연장 선상에 있다. 이미 망자가 되어 버렸음에도 친노를 역적의 폐족처럼 몰아 부치는 것은 언론한테 덤비면 부관참시도 마다 않겠다는 경고다. 조중동이나 종편의 위력이 많이 위축되었어도 한심한 야당 세력들은 ‘부관참시’의 공포에 떨고 있다. 세상은 이미 보수 언론 영향력의 축소를 알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정치인들만 ‘친노 패권’을 실체가 있는 금기로 착각하고 산다.
영남 기득권
1990년 3당 합당과 함께 영남의 개혁 세력들은 김영삼을 따라 간다. 김영삼의 학력과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계급적 이미지, 영남 출신에다가 민주당 구파를 배경으로 하는 보수 이미지는 영남 기득권 세력이 김영삼과 함께 지지 정당을 갈아타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그때부터 영남은 야당의 불모지가 되고 지역 투표는 심화되었다.
김영삼을 지지하던 영남 개혁세력들에게 김영삼이 발탁한 노무현은 ‘애’였다. 정치적 사부 김영삼을 버린 노무현이 그들에게 고깝게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2002년 민주당 경선을 통과한 노무현은 김영삼을 찾아가 시계를 내 보이며 옛 인연을 강조하는데 . 이때부터 노무현의 인기는 급락하기 시작한다. 김영삼의 별세 후 그를 향한 세간의 우호적 추모를 생각한다면 2002년 노무현의 김영삼 방문은 정치적 제스처로 봐 넘길 수 있는 하찮은 사건이었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를 찾아 간 것도 아니었다. 박정희 묘소에 참배한 문재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물렁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노무현의 김영삼 방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선거 운동’이었다.
왜 당시 모든 언론은 노무현 죽이기에 앞장 섰을까? 이는 노무현과 김영삼의 화해로 인해 1990년 이후 보수화된 영남 개혁 세력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시비였다. 노무현이 영남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는 것을 저들은 철저히 틀어 막았다. 당시 진보 세력은 노무현의 김영삼 방문에 너그러워야 했다. 생각 짧은 진보(언론도 포함)는 노와 김의 관계를 끊어 놓으려고 하는 조중동의 기획에 놀아나고 말았다.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은 되었지만 영남의 맹주는 끝끝내 되지 못했다.
진보 기득권, 지식인, 보수 야당세력
노무현은 사석에서 자신은 82학번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대학을 안 다닌 그가 사회 의식에 눈을 뜨게 된 시기가 82학번들이 눈을 뜨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명숙, 김근태, 이해찬 입장에서 보면 한참 후배다. 노무현의 학번(?)으로만 따지자면 유시민도 운동권 선배다. 노무현의 참모 그룹 중에서는 안희정 정도가 정통 운동권이지 이광재 천호선 등은 그 계열도 아니다.
다시 말해 노무현의 참모들은 정통 운동권들과는 다른 개념의 운동권들이었다. 한명숙 이해찬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운동권들은 노무현을 지지하는 세력을 일종의 팬덤 그룹이라고 생각하고 마뜩잖아 했다. 따라서 노무현을 대놓고 지지하는 것은 운동권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그들을 정치적 판단이 부족한 설익은 존재들로 보았다. 그런데 이들의 조직력이나 추진력이 기존 운동권의 역량을 넘어서니 그것을 패권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물론 노무현의 정책을 ‘진보’로 규정할 수는 없다. ‘좌측 깜박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는 것이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노무현을 비판하는 진보도 ‘진보적’이지 않은 것은 이미 오래 된 일 아닌가?
지식인 계층도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기존의 야당 지도자들과 교류하던 지식인 그룹보다는 정치권과는 거리가 있던 그룹들이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기득권 진보 지식인들은 노무현 정부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지금도 이른바 ‘먹물’들이 노무현 언급을 주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에 원로 진보 지식인 한완상, 이만열 등이 노무현에 대한 애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표명하고 있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야당 정치 기득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새 시대의 장자가 되려 했지만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 말았다”는 노무현의 말처럼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개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4.19 당시 민주당에서 형성된 야당의 정치 문법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구세력들은 신흥 세력을 패권으로 몰기 시작했다.
호남 세력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에게 보내준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는 노무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대중의 간판을 달고 부산시장과 부산 지역 국회의원에 도전했다가 번번히 낙선한 노무현에 대한 부채 의식이 호남인들에게 있었다.
대북 송금 특검 실시, 열린 우리당 창당은 호남인들의 배신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친노’의 분명한 패착이었다. 그 중심에 천정배가 있었는데 그가 친노 패권 운운하는 것은 뻔뻔함을 넘어선 정치적 ‘신분 세탁’이다.
이것까지는 호남인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진솔하게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반문 정서는 실체가 없다. 문재인이 참여 정부 시절 호남 인맥을 홀대했다는 게 반문 정서의 핵심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지난 대선 투표에서 표심으로 드러나야 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체가 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반문 정서 때문에 천정배나 무임승차한 안철수를 지지하는 일이야 말로 저들이 깔아 놓은 덫에 걸려든 일에 다름 아니다.
결국 친노 패권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패권을 상실한 이들이 한국 야당 정치 프레임에서 ‘듣보잡’같은 노무현 지지세력에 대한 질투와 시기다. 우리 나라 속담은 왜 그리 맛깔 난지? “홧김에 서방질”. 그들은 친노가 보기 싫다고 벗어난 길을 선택했다.
2012년 민음사에서 시상하는 31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는 20대의 젊은 시인 황인찬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문예지인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시상하다가 지금은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무려’ 김수영 문학상의 수상자가 20대라니? 그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를 구입하고 그를 검색해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팬클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열혈 팬이었다. <샤이니>와 <김수영>이 내 속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20대 천재시인과 아이돌 그룹의 현란한 춤이 부조화 했다. 나도 구세대임이 가차없이 증명되고야 말았다.
친노에 대한 기득권의 인식은 ‘설익은 팬덤’ 정도에 머물러 있다. 물론 전통 정치 문법으로 보자면 그럴 수 있다. 팟캐스트에 열광하고, 호불호가 분명한 이들에게 정치적 미래를 찾는 것이 불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고흐의 그림에 심취하고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어야 시인 같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만화를 즐기고 아이돌을 따라 다니는 시인에게서도 감동적 시가 나오는 세상이다.
내 패권을 뺏겼다고 다른 이의 세력화를 저주하는 정치인들이 만드는 세상은 팬덤들이 만드는 세상보다 더 위험하다.
One Comment
James Dean
노무현의 실정을 얘기하자면 숨이 찰 정도이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 전의 활동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가 저지른 실정을 가릴 수 없다.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아시아에서 최초로 미국과 체결한 FTA, 입학사정관제, 지지자들을 배신한 대의민주주의 훼손…..
가장 큰 죄악은 범민주세력을 깨뜨린 열린우리당 신당 창당과 지역주의 양비론이다. 반세기 가까이의 경부축 중심의 영남퍼주기 성장정책의 부당한 과실을 되돌리라는 호남의 ‘우리가 다르냐? 정당한 몫을 되돌리라’는 외침을 소음으로 듣는 지역주의 양비론은 영남의 부당한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하므로써 진보나 좌파의 기본가치인 평등을 부정한 것이다. 이런 노무현을 추종하는 것은 역사의식이나 사회적 성찰이 천박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