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 나체에서 나체 팬션까지
박근혜 전태통령의 탄핵 후 자택이 있는 삼성동 골목에서 지지자들이 진을 치고 있을 때 중년의 남자가 탄핵에 반대하며 나체 시위를 벌이는 사건이 있었다. 그에게 나체는 정치적 저항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필립 카곰은 ‘나체의 역사’에서 이렇게 쓴다.
인간은 옷을 벗으면 공격받기 쉽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이상하게도 강해진다. 정치적 시위에 나체가 자주 이용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몸을 노출해 복합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도발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현 상태에 도전하며 두렵지 않으며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명분에 힘을 싣는다.
모피 금지에서부터 환경운동까지 나체가 주요한 저항 수단이 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최근 한국에서 전해져 오는 뉴스 중 충북 제천 누드 펜션에 관한 기사가 한동안 중심에 섰었다. 제천에 누드 동호회가 사용하는 펜션이 있는데 그들로 인해 피해가 크다며 동네 주민들이 막아선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동호회측은 펜션을 폐쇄했고 경찰은 건축법 위반 등으로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누드 이외의 사안으로 조사를 예고 했듯이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벌거벗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음란 공연에 해당되어 위법이 되지만 이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누드 동호회측에서는 일부러 펜션 근처에 오지 않는 한 노출될 염려가 없다고 항변했고 주민측은 마을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SNS시각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어떤 이는 SNS에서 따발총으로 쏘아 죽여야 한다고 했고, “거기 동성애자라도 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라는 생뚱 맞은 댓글도 있었다. 나체가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행위라면 이성애자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일 터인데 ‘누드=동성애=죄악’의 회로가 댓글을 쓴 이의 머리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이런 논쟁에서 재가 수도자인 박총씨는 “자신들이 (노출되지 않게) 조심하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요”라는 뉘앙스의 댓글을 달았다. 그 SNS논쟁에서 비판이 아닌 유일한 의견이었다.
동성애가 ‘만악의 근원’으로 치부되듯이 한국 사회에서 누드는 아직 ‘죄악’이다. 한국 사회가 누드를 죄악시할만큼 깨끗한 사회가 아닌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벌거벗은 채 벌어지는 마사지, 지압, 매춘, 룸싸롱, 노래방 도우미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시선을 벗어난 음침한 곳에서 성행하는데 제천의 동호회 회원들은 졸지에 이들과 같은 격이 되고 말았다.
누드가 이렇게 비판을 받고 있지만 누드의 역사를 보면 ‘죄악’의 상징은 아니었다. 초대 교회의 세례는 모두 나체 상태에서 이루어 졌다. 200년경 로마의 성 히폴리토는 세례의식은 완전한 나체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여성들은 장신구까지 모두 벗으라고 했다. 350년 경 성 치릴로는 “여러분은 이제 옷을 벗고 나체가 됩니다. 이는 옷을 빼앗긴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나체가 되면서 왕의 지위와 권력을 빼앗겼지만 십자가 위에서 대담하게 이겨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널리 알려진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도 나체에 관한 이야기다. 11세기 잉글랜드 코번트리의 귀족부인인 고다이바 부인(Lady Godiva)은 레오프릭 영주의 무리한 세금징수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자 아내로서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남편에게 부탁했다. 이에 영주가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고 조롱하자 고다이바는 영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마을을 도는 동안 아무도 내다보지 않기로 했다는 전설이다.
“지상을 방문한 천사가 수첩에 적어 가는 특이한 사실, 인간은 몸을 노출하면 엄격한 처벌을 받는다”. ‘윌든’의 저자이자 자연주의자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일기에 쓴 말이다.
C.S 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한참 후에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어떤 사람은 옷을 벗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입고 있었다. 하지만 벗은 사람이라고 해서 덜 꾸민 듯 보이지 않았으며 입은 사람이라고 해서 우람하고 건장한 근육과 광채나는 매끄러운 피부를 가리지도 않았다”라고 썼다.
이처럼 나체는 신학자들에게나 자연주의자들에게 금기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세 신학자들은 나체를 네 종류로 분류했다.
- 자연적 나체 – 원죄로 타락하기 이전의 자연적 상태, ㅡ그리고 천국 최후의 심판 부활 때 같은 상태
2. 일시적 나체 – 가난해서 혹은 사도, 고행자, 수도사, 수녀처럼 자발적 거부로 세속적 물건이 없는 상태
3. 상징적 나체 -고해할 때처럼 영혼이 신 앞에서 그대로 드러난 상태
4. 죄악의 나체 – 허영과 육욕이 지배하는 상태
대부분의 자연주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나체 상태가 처음 셋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제천의 동호회 회원들은 어떤 생각에서 벗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옷벗는 행위’ 모두를 네 번째 단계로 몰아 부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혹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욕망이 그들의 나체를 통해 드러날까 두려워서, 다시 말해 자신의 욕망이 들킬까 두려워 그토록 분노하는 것은 아닐까? 나체를 자연주의적으로 받아 들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나체를 통해 성적 욕망이 자극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나체 취향을 보면서 자신은 어디에 속해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 나체의 역사에 대한 부분은 필립 카곰의 ‘나체의 역사'(학고재, 2012년)를 참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