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에게 샌더스의 역할을 맡겨라–
우상호 더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원내 대표 취임 일성에서 “우리 당에는 문재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안희정도 있고 여러 대선주자들이 있다” 고 밝혔었다. 이어 문재인 전 대표는 “안희정과 같은 좋은 후배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덕담을 했고 안희정은 자신은 ‘불펜투수’라며 당장 문재인의 대항마가 되는 것을 유보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누구의 입에서도 ‘이재명’은 거론되지 않았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낮은 지지율으로라도 이재명이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도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이 이재명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를 향한 의도적 무시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이재명의 ‘격’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도 아니고 일개 시장인 그가 대선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기존 후보군의 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 전략적으로 손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두번째로는 시장 ‘주제’에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그의 ‘과격성’이 더 민주당 이미지에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단식을 이어가며 정부의 지방자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민주당 차원의 지원이 없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이 두 가지 전제는 더 민주당이 총선 승리 이후 다음 대선에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전략이란 다름 아닌 ‘부자 몸조심’이다. 문재인 후보는 반기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20% 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별다른 활동이 없는 그가 이 정도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은 ‘친노’의 저력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러한 열성 지지자에 중도표를 흡수하면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안정적 이미지를 더불어 민주당이 다음 대선의 컨셉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종편을 비롯한 보수 언론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에 얹혀서 그냥 가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전략은 더민주당에게 큰 패착이 될 것이다. 지난 총선의 승리는 안정을 희구하는 세력들의 결집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었다. 안철수 김종인 따위가 ‘친노 패권’ 운운하는 데에 분노한 친노 + 알파 가 응집한 결과다. 여기서 알파는 노무현의 약한 메시아(발터 벤야민이 말한) 또는 약한 그리스도(지안느 바티모가 말한) 이미지에 표를 던진 사람들이다. 다시말해 지난 총선에 나타난 중도층의 성향은 정의였고 약자에 대한 연민이었다. 16대 대선에서 선거 하루 전날 정몽준의 노무현 지지 철회는 노무현의 승리에 큰 역할을 했고 지난 총선에서 호남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문재인의 이미지가 비호남권에서 더 민주당의 응집을 가져 왔다. 김태형 (더 심리 연구소장)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은 돈으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돈과 성장 논리에 표를 던졌던 이들에게 이명박 박근혜 기간은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모두 정의와 연민의 증거였다. 그런 점에서 총선 이후 알파의 힘을 확인한 더민주당이 친노 마케팅에 나서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연민의 대상으로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존재다.
다음 대선을 위한 더 민주당 경선의 출연진이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으로만 짜여 진다면 비슷한 이미지의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무대의 흥행 실패는 예정된 수순이다. 문재인의 점잖은 이미지는 반기문과 차별성이 없고 박원순 안희정의 행정 경험 이미지는 유엔 사무총장의 ‘국제 감각’을 이겨낼 수 없다. 반기문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말도 안되는 사무총장의 별칭을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우습게 보다가 당했던 기억을 곱씹어야 한다.
여기에 김종인이 가세한다거나 비노측 후보가 나오게 되면 종편 흥행에만 성공하는 진흙탕 싸움이 된다. 총선과정에서는 친노가 약자로서 연민의 대상이었지만 대선 경선과정에서는 강자가 되어 버린 친노가 비노를 내칠 경우 지난 번 총선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이재명이 필요한 까닭
이재명은 밋밋한 대선 경선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상대후보를 향한 공격성 발언 보다 박근혜를 겨냥해 독설을 쏟아낼 그를 보는 것은 유쾌하다. 여기에 성남시에서 시행한 복지를 비롯한 여러 정책의 성공이 그에게 안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어 강성과 행정적 안정성이 함께 가는 후보로 각인될 것이다. 이재명의 ‘강성’은 스스로가 약자로서 약자를 대변하는 ‘강성’이기 때문에 노무현과 많이 닮아 있다. 선거 과정에 가족사를 비롯한 그의 과거가 들추어 질 터인데 이 또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그를 제거하려는 정보기관의 온갖 ‘작전’에 그가 걸려들지 않았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동한다. 지금 단식을 하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 지지 방문을 한 보수단체 회원들에게도 든든한 후원군 역할이 기대된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민주의자로 자처하며 자칫 재미없을 뻔 했던 경선에 흥행을 가져왔다. 그의 발언은 미국이 처한 현 상황을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힐러리 클린턴을 어느 정도 왼쪽으로 옮겨 놓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샌더스의 선명한 발언들은 힐러리의 ‘이메일 약점’까지도 덮어주는 역할을 했다. 샌더스는 갈피를 잡지 못하던 민주당을 살린 메시아였고, 힐러리의 죄를 대속해준 그리스도였다.
더불어 민주당은 이재명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해야 하는데 이 시장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미숙함을 드러내고 있다. 중도층의 눈도장 받기 경쟁이 될 대선 후보 당내 경선에서 그의 서슴없는 발언은 흥행을 가져올 것이고 누가 후보가 되든 오른쪽을 향한 방향을 바꾸어 놓는 역할을 그가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대선 승리의 비책이다.
이재명이 대선 경선에서 승리해도 그의 이미지는 친노와 척을 지지 않기 때문에 표가 분산될 우려도 없다. 만약 지게 되더라도 그는 차차기를 노려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굶고 있는 그에게 정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번 단식을 계기로 성남시장을 그만 두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방 자치 재정교부에 관한 시행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지방자치 지킴이 활동'(이라고 쓰고 대선 행보라 읽는다)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되면 좋지만 안되면 2018년의 경기도 지사에 도전하고 성남시 중원구에서 낙선한 은수미 전의원이 성남 시장에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론은 이거다. 더 민주당이 대선 경선과정에서 이재명을 투명인간 취급하면 다음 대선 승리는 없다.
3 Comments
이규봉
정확한 상황판단을 한 글에 놀랐습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새누리당 화 되어버린 더민주당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언입니다. 이재명 시장이 필요한 이유가 아주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표출되어 있네요.
헤이즐
한국에 이렇게 살아 있는 인물이 있다는것이 다행 이다. 우물쭈물 문재인, 여우 박원순, 연약한 안철수, 착한 안희정 모두을 대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대선을 향해 힘차게 나가기 바란다.
김헌용
일단 2016년 12월까지는 님의 예상이 적중한 것으로 보이네요.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