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날개’ 문성근 대표 인터뷰
전 민주통합당 대표이자 ‘시민의 날개’ 대표인 문성근 씨가 장호준 목사와 함께 미주지역 토크 콘서트를 위해 LA를 방문했다.
LA 한인타운의 한 호텔에서 만나 정치인으로서의 총선에 대한 의견과 앞으로의 전망, 이번 토크 콘서트의 의미 등을 2시간 가까이 나눌 수 있었다.
문 대표는 문익환 목사와 장준하 선생에 인연과 기독교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솔직한 어조로 전했다. 또한, 이번 총선에 대해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평가했으며, 당을 분열시키고 나온 안철수 씨에 대해선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소위 ‘노빠’라고 정의 내리는 것에 거부감을 표하며, “내 몸을 찢지 말라. 내 몸에는 네 사람이 같이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민주진보진영이 오는 대선을 좀더 철저히 대비해야 함을 당부하면서, 지난 총선에 미진했던 ‘시민의 날개’의 활동이 좀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많은 협력과 지지를 부탁했다.
다음은 문성근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해 정리한 내용이다.
– 이번 미주지역 토크 콘서트를 장호준 목사와 함께한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예전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워낙 문 목사(문성근 대표는 문익환 목사를 이렇게 호칭했다)와 장준하 선생이 특수한 관계였다. 그러다보니 마음속으로는 (장호준 목사와) 늘 형제와 같다.
문 목사는 장 선생에게 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장 선생이 (민주화운동을) 너무 일찍 시작해서 자녀들 공부를 시키지 못했다. 문 목사가 76년에 수감됐는데, 그때 막내인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이미 공부를 다 시킨 상태였다. 그런 점에서 장 선생 가족에 대해 늘 미안하게 생각했다.
장호준 목사가 의장으로 있는 미주 희망연대가 미국 교포사회가 만들어진 이래로 민주진보진영 단체로서 가장 광범위한 조직이다. ‘미주 희망연대가 시민의 날개라는 플랫폼 안에 둥지를 틀면 한국과 소통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라는 구상을 3년 전에 왔을 때 언급한 적이 있다.
– 문익환 목사님과 장준하 선생님의 인연은 어느 정도인가?
지난 총선에서 조승래 후보를 돕기 위해 내려갔을 때, 부활절 예배를 드린 적이 있다. 그때,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주제로 하는 설교를 들었다.
문 목사가 처음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게 76년 ‘민주구국선언사건’ 때이다. 문 목사는 당시 책상에 장준하 선생 영정 사진을 액자에 담아 모셔놓고 성경번역을 하셨는데, 그해 2월 달에 사진을 보면서 장 선생과 대화를 했다고 한다.
“장형, 3.1절이 다가오는데 형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라고 했더니 장준하 선생이 “그거 문형이 하면 되지 왜 나를 찾아?”라고 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나 하나님과 대화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문 목사는 장준하 선생과 거의 일심동체 같이 깊게 이해했다. 문 목사는 장 선생의 모든 글을 다 읽었었다. 그러니 대화가 되는 것이다. 장준하 선생을 완전히 이해해 일체화가 되어 대화가 가능한 것이었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질문은 ‘정말 네가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느냐?’라고 묻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예수가 죽고 나니까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 것이다.
– 듣고 보니 신앙생활이 궁금해진다. 교회는 나가는지?
교회 생활은 안한다. 저는 목사들이 불쌍하다. 물론 성경이라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어 늘 퍼올릴 수가 있겠지만, 인간이 어떻게 일주일에 그렇게 많이 설교를 할 수 있는가? 그건 인간에게 고문이라고 본다. 보고 있으면 고문당하고 있는 것 같아 불쌍해서 안 가게 됐다.
제가 교회는 안가지만, 어려서부터 매일 듣는 것이 있어 기독교적 성향이 강하다. (문 대표의 조부는 문재린 목사이며, 아버지는 문익환 목사, 숙부는 문동환 목사이다- 편집자 주)
– 기독교적 이상이 현실정치에서도 가능한가?
예수가 정치범이지 않았나?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자’,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혁명적 제안이었다. 정치로 보면 신분제 절대왕정에서 공화정을 이루자는 것이었으니 죽임을 당한 것이다.
민주진보진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많은 분들이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대의제도 이전에 활동했다. 하지만, 그의 뜻은 시민혁명 후 대의제도로 이어졌다. 현재는 대의제도가 금융패권에 밀려 다시 신분제로 복원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 할 수도 있다.
금융자본은 세금과 관세, 송금의 제한을 없애기 위해 국경을 없애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 다. 그게 신자유주의이다. 금융패권의 입장에서는 단일국가가 편하다. 그리고 지금 자본이 금융패권으로 완전히 흡수되었고, 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금은 금융패권이 인류가 폭발하거나 붕괴되지 않을 정도로 부스러기를 계속 던져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샌더스 같은 사람이 나와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 아닌가?
– 오늘날 한국도 이런 신자유주의의 패권 아래 있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2008년 미국 국방부 장관이 서울에 왔다 일본에 가서 집단자위권을 환영한다는 발언을 했는데, 그것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 문 목사 평전을 다시 꺼내서 읽었다. 문 목사가 89년에 평양에 갔다. 86년 이동수 군이 서울대에서 분신하는 것을 기자가 찍었는데, 그것을 보고 문 목사가 엄청 울었다. 그래서 그 죽음을 막겠다는 뜻으로 방북했다.
근데, 문 목사의 방북을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당시 동서 냉전이 끝나는 시점이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분단을 우리 스스로 지울 수가 있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이 ‘고려연방제 고집하지 않겠다. 다음단계를 두고 사전교류협력단계를 도입 하겠다’고 말했고, 남측 정부가 동의하면 되는 것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문익환 목사가 합의한 바대로 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에 시진핑이 취임 후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진핑은 등소평이 ‘2030년까지 야심을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를 일찍 깨뜨렸다. 오바마를 만나 “태평양은 둘이 나눠써도 충분할 만큼 넓지 않는가?”라며 G2로 인정해달라고 했다. 금융패권 역시 중국이 국경을 가지고 있으니 몰락시킬 필요가 있었다. 금융패권과 미국의 정치 세력의 이익이 맞았다.
이 상태에서 한국은 하필이면 박근혜 정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가 뭔지 느낄 때 유신을 맞았다. 그런데다 아버지 사후에 사람들이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증오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고가 유신에 맞춰져있다. 사드도입, MD가입은 이명박 정권도 거부했던 것이다.
중국이 왜 사드를 그렇게 싫어하나?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갖다놓겠다는 것은 과거 미국이 소련을 붕괴시켰던 그 작전을 자신들에게 그대로 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에다 요청하는 식으로 했으니.
또한, 북의 지하자원이 1경 1천조 정도 묻혀있다고 한다. 그게 차례로 중국과 러시아로 넘어가고 있다. 러시아가 북쪽 철도 3천 5백킬로 현대화를 계약했는데, 23조에 계약했다. 대금은 희토류 포함 지하자원으로 받기로 했다. 그걸 우리가 했어야 했다.
문성근 대표가 LA 총영사관에서 열린 세월호 2주기 추모제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정당 혁신과 시민운동의 조직화”
– 총선 이야기로 돌아가보겠다. 이번 총선을 간단히 총평한다면…
이번 총선에는 위태로운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 참패할 수 있는 구도였는데,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기적과 같은 결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기적이었으며, 여러 분야에 과제를 남긴 선거였다.
우선, 시민사회의 경우에는 분열과정, 단일화 거부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넋 놓고 당이 깨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 시민사회 쪽에서 어떻게 조직화해낼 것이냐, 정치권이 저런 모험을 벌이지 않도록 압박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되는 과제가 있다.
더민주 경우에는 호남의 이탈에 대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87년 이래, 선택의 여지를 주지 못해왔다. 이제 정당의 문턱을 낮춰서 시민참여를 활성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지구당 위원장의 독재적 권한이 없어진다. 기초형 광역위원의 공천권을 가진 지구당 위원장의 독재적 권한을 시민참여형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정당혁신의 핵심이다. 더민주는 그걸 해야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의 기회를 드리고, 다시 마음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당의 경우는 지금이 지지도에서 꺼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국민의당은 태어나서는 안되는 정당이었다. 새누리당이 합리적 보수를 다시 복원하면 되돌아갈 유권자가 많고, 더민주가 정당혁신을 해서 시민들에게 선택의 권리를 드리면 호남층 역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국민이 절묘하게 기적적으로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더민주와의 공조를 하는 것이 그들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대선이 문제이다. 해법은 더민주의 정당혁신이고, 시민사회의 조직화이다.
– 안철수 씨가 대선주자로 나서 3자 대결로 예상하는가?
이번 총선의 정당 지지도는 안철수 개인 노력과는 무관한 측면이 많다. 하지만, 본인은 더민주보다 정당지지도가 더 나왔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확장성이 더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완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그 이전에 안철수 씨가 새누리당에 입당할 가능성도 있다. 오세훈, 김문수, 김무성 등이 이번 총선에서 다 죽었다. 남은 후보는 반기문 씨 영입인데, 그는 정치인이 아니라서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경필, 원희룡이라는 2022년 주자를 2017년 주자로 앞당겨 쓰는 것도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안철수 영입도 고려할 것이다. 이건 저 개인의 의견이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민주진보진영의 유권자들은 그것까지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 안철수 씨를 여권의 인물로 보는 듯 하다.
본인이 정치에 입문할 때 ‘새누리당의 확산을 막겠다’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 말을 철회하지 않는 한 야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새누리로서는 마땅한 후보가 없다. 안철수 씨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그럼 둘의 이익이 맞으면 그렇게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저는 안철수 씨는 근본적으로 정치를 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첫째 이유로 당을 쪼개고 나갔다는 점과, 두 번째로 이희호 여사 면담 사건을 들고 싶다. 종편이 야권 분열을 즐기느라 이 사건을 덮어주고 넘어갔다. 종편이 덮으니까 국민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그 일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치명적인 사건이라고 본다.
안철수 씨가 이희호 여사를 만났을 당시의 녹취록이 있었다. 이를 보면 이희호 여사는 거의 말이 없다가 맨 마지막에 “제가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습니다”라는 안철수 씨의 말에 “그러세요”라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런데, 안철수 씨가 이희호 여사를 만난 후 언론을 향해 “새로 만드는 당이 잘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도 주셨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거나 남과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들은 사실이 없는데, 자기가 원하는 말을 들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이다. 권양숙 여사는 정치적 발언은 거의 안하시지만, 이희호 여사는 정치를 했던 분이다. 그분의 안철수 지지여부는 아주 중요했다. 저는 이 사건을 봤을 때 안철수 씨는 정치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고 본다.
– 이번 선거결과에 종편의 판단착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는가?
이번 총선에서 나온 결과의 상당 부분은 종편의 판단착오였다고 본다. 종편이 안철수 씨를 너무 띄웠다. 여권 분열로 새누리당의 압승을 너무 자신했다.
과거 언론에 근무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종편 이전에 조중동과 새누리당 전략실의 비정기적인 다양한 모임이 있다는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직원과 알바들이 복원했다. 통신 감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제가 아는 일반 네티즌까지 통신 자료를 다 뒤졌다. 국정원과 새누리당 전략실과 조중동 관계자와 종편 편성 담당자들과 부정기적인 다양한 전략 모임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렇게 추정해볼 수 있다. 그들이 판단 착오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반복될 수 없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노 대통령의 예지력”
– 더민주로의 정당 복귀 의사는 없는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해서 작년 7월 ‘시민의 날개’를 시작했다. 공동제안자가 30명 정도 된다. 함세웅 신부를 포함해 시민사회 활동을 많이 했던 분들이 “초정파로 모여야 하는데, 네가 더민주로 복당해 출마할 예정이라면 운동이 곤란하다”라며 저에게 불출마를 요구했다. 그래서, 대국민 제안에서 불출마를 이야기했다. 이번에 안했는데 제가 뭘 또 하겠는가? 더 이상 정당 활동 할 생각이 없다. 시민의 날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에 집중하겠다.
– ‘시민의 날개’는 어떤 조직인가?
지난해 7월에 만들 때는 이번 총선에 기여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민의 눈’이라고 투개표 감시 활동만 했고, ‘시민의 손’, ‘시민의 발’ 운동은 미진했다. 이재명 씨가 ‘손가락 혁명’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국정원 알바단과 같은 새누리를 돕는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조직화하자는 것이 ‘시민의 손’이고, 민주진영의 후보자들을 도와 당선이 많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시민의 발’이었다. 욕심이 많아서 너무 다양한 기능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작동이 잘 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약속하기 어렵지만, 가을정도까지는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수정작업을 할 것이다. 내년 초에는 정당들이 대선 후보 경선에 들어갈 것이다. 대선 경선에 국민선거인단 참여부터 시작하려한다.
이번 총선에 ‘시민의 눈’이 많은 반향을 얻었는데, 이번은 워밍업이었다. 대선 때 가면 투개표감시조직이 없는 지역구가 대단히 많다. 더민주 경우도 오래된 정당이지만 지방조직이 매우 취약하다. 지구당위원장의 사조직일 뿐이다. 특히 대구 경북지역은 아예 없다. 시민조직의 필요성이 아주 절실하다.
– 지난번 대선도 문제가 많았다고 보는가?
선거무효소송을 할 만한 뚜렷한 물증은 없었지만, 여러 문제점이 많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이 문제제기를 했었다. 그래서 3분의 1 정도 재개표하다 중단 했었다. 그때 과정을 되돌아보다보면, 이회창 후보 개표 감시원으로 들어갔던 사람들 중 1천여명이 ‘내가 일을 제대로 안했다’라는 자의서를 썼다. 그걸 모아 재개표를 했는데 전혀 변화가 없어 중간에 포기하고 당대표가 사과하고 끝났다.
지난 대선 때는 그런 자의서를 써줄 사람이 없어 소송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의심의 여지는 많았다. 방법으로는 선거법 개정을 들 수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면 투개표 감시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더민주나 국민의당 구조로 봐서는 그런 걸 열심히 할 당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의 눈’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 ‘시민의 날개’는 계속해서 더민주와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처음 출마하는 후보를 위한 지원활동을 했다. 저는 배우니까 도움이 된다고 봤다. 또한, 노회찬, 심상정 후보 지지선언도 했다. 저는 야권을 지지하는 것이지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생각은 없다.
–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알려졌다.
질문이 마치 ‘너 친노의 핵심이지?’라는 예단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먼저 말한다. 그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며, 김근태 의장과 문익환 목사께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사는 시민이다.”
이게 나의 정체성이다. 내 몸을 찢으려 하지 마라. 내 몸에는 네 사람이 같이 있다. 그걸 전제로 말하겠다.
노 대통령이 유서 마지막에 “집 가까운데 작은 비석 하나를 세우라”하고 “오랜 생각이다”라고 당부했다. 장례기간동안에 어디에 묻을 것인가를 놓고 대대적인 격론이 벌어졌다. 전직 대통령이기 국립묘지에 묻어야 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오랜 생각’이라는 유서 때문에 봉화에 묻었다. 왜 거기에 묻으라고 했을까? 그건 지역구도를 극복하는 데 죽어서도 기여하겠다는 뜻이었다.
2008년 가을에 제가 노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2010년 지방선거에 부산시장으로 다시 출마하시라고 권했다.
“지역 구도를 극복하시겠다고 정치를 시작하셨는데, 참여정부 5년 동안 못하시지 않았는가? 이번에 또 나갑시다. 아마 떨어질 겁니다. 그렇지만 14년에는 될지도 모릅니다. 프랑스의 지스카르뎅 대통령은 퇴임 후 지방선거에 3번 나갔습니다.(1번 떨어지고 2번 됐다) 아직 젊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대답을 안하시고 저를 보시더니, “내가 왜 봉화에 내려왔겠습니까? 내가 여기 내려와서 살면, 열린우리당이 전국 정당화 되는데 도움이 될까싶어서 왔는데, 공중분해 되서 많이 아쉽습니다.” 이렇게 말하시더라. 그 깡시골에 내려가실 때부터 지역구도 극복에 기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립묘지는 시민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봉화는 동네다. 관광지가 돼버렸다. 그분을 찍었느냐 안찍었느냐를 떠나 대통령이 (국립묘지 외에) 묻혀 있는 곳은 봉화밖에 없다. 엄청난 예지력이다.
그 후에 조금씩 변해갔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30% 지지를 받았다. 이후 문재인 후보가 40%를 얻었다. 2012년 총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고, 45% 언저리에 있던 사람이 저를 포함해 4명 있었다.
저도 당시 ‘영남이 돌파되야 정치가 정상화된다’는 생각으로 출마했다. 당선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가서 바람을 잡으면 몇 분은 되지 않을까 했지만, 문재인 후보 혼자 됐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것이다. 노무현은 한 번도 안됐다. 그런 노력들이 어우러져서 변화를 이뤄냈다. 이번에 5명이 당선되고 50%가 넘어갔다. 부산시민께 고맙고, 진짜 감격스럽더라.
– 민주진보진영이 한국 정치를 위한 과제를 제시한다면.
오는 대선에 정권교체를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첫 번째로 더민주가 온과 오프를 결합한 네트워크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당에 참여할 수 없는 국민이 있는데, 왜 당원끼리만 하려고 하는가? 미국은 오픈 프라이머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당원 중심이었던 영국 노동당도 시민참여를 받아들였다.
우리 국민의 경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도 하는데 당이 이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호남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왜 시민의 말을 안 듣는가? 그것을 극복하려면, 민주통합당의 합당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당이 시민속에 뿌리박은 정당으로 변할 수 있고, 호남의 뜻을 받아들여서 지지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4년마다 김종인 같은 사람을 불러들여야 한다. 당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이런 일이 발생한다. 정당혁신이 안되면 4년 후에 또 그래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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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NewsM 에도 실렸습니다.
2 Comments
James Dean
반세기 가까이 경부축 위주의 퍼주시 경제정책의 과실을 누린 영남패권의 기득권에 반대해 원래 위치로 정당한 몫을 되돌리라는 호남지역주의가 대립한다.
그런데 호남지역주의든 영남패권주의든 모두 닥치라고 한다.
이를 지역주의 양비론이라 하는데 자살한 노무현이 선봉이고 친노들이 추종세력이다. 평등이란 기본가치를 부정하는 지역주의 양비론을 지지하는 노무현은 사이비 진보다. 문성근이 DJ나 김근태나 문익환에게 슬쩍 노무현을 끼워넣는 것은 역사의식이나 사회적 성찰이 천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신차려라 생리적 계급장이 아깝다… 양자를 외면한 노무현이 네 몸의 일부라고? 바이러스를 바이러스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
KendallSpesy
оформлення дисертації – курсова робота зразок, автореферат з прав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