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언론’은 다른 나라 언론의 게이트 키핑의 피해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에릭 가세티 LA 시장은 2020년 3월 20일 자정을 기해서 캘리포니아 전 주민을 집에 머물도록 하는 명령을 발동했다. Safer at Home 이라고 이름붙여진 이 명령의 세부 사항을 보면 예외 조건이 많기는 하지만 결국 캘리포니아 주정부, 아니 미국 연방 정부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이 봉쇄와 단절 밖에 없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실제로 LA카운티는 의사들에게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테스트를 하지 말라며 코로나바이러스의 억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Los Angeles County health officials advised doctors to give up on testing patients in the hope of containing the coronavirus outbreak, instructing them to test patients only if a positive result could change how they would be treated.)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미국의 초동 대처실패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독감 사망률에 비교하며 별 것 아니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China Virus라고 부르면서 제일 먼저 발병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우한지역을 겨냥했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것으로 타격을 입힐 생각도 있었겠으나 의식 깊은 곳에는 아시아 특히 중국에 대한 서구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이 작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까지 상업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는 세계 전역의 사람들이 북적되던 곳으로 크고 작은 전염병에 시달렸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번 코로나 정국에 중국인을 제일 먼저 입국금지 시켰으며 조수미가 나온 산타체칠리아 음악학교에 재학중인 아시아 학생들을 등교를 금지시켜 비난을 자초했다. 하지만 지금 이탈리아는 중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가 최초 발병지였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 에서 ‘균’을 많이 참조했다고 밝힌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1975년 출판, 한글번역은 1992년 출판) 제일 뒷 부분에 중국의 전염유행 연표가 9페이지에 걸쳐 나와있다. 퀸시대학 극동사 교수 조셉 차가 편찬했다고 하는데 기원전 224년부터 1911년까지 사료를 꼼꼼하게 찾은 결과라고 하니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그냥 ‘하남에 전염병이 돌다’라고만 되어 있거나 심지어는 장소미상인 기록도 많다. 증상은 당연히 없다. 넓은 땅이니 많은 전염병이 있었겠지만 그게 모든 전염병의 최초 발생지라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사료를 뒤지다 보면 안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중국 이외의 지역에는 사료가 부족했다고 볼 수 도 있다.
이런 사료들 외에도 아시아를 전염병의 근원으로 삼은 기록들은 또 있다. 1347년 킵차크칸국 군대가 크림반도에서 제노바 교역소를 포위하고, 페스트 환자의 시체를 도시 속으로 쏘아 보냄으로써 페스트가 유럽에 퍼졌다는 정설같은 가설이다. 킵차크칸국은 몽골이 세운 서방의 영지인데 그들은 중앙 아시아 초원지대에서 페스트로 죽은 시신을 끌어 모았다. 그런 다음 썩은 시신을 성벽 안으로 집어 던졌다는 이야기인데 이게 사실이라면 페스트로 죽은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몽골군이 먼저 페스트로 전멸했을 것이다.
스페인이 무슨 죄라고
아시아는 아니지만 애꿎게 독감의 근원지가 된 지역은 스페인이다. 1918~1920년에 퍼진 스페인 독감은 당시 16억이었던 세계 인구의 1/3을 감염시키고 2500만 명이상(최대 1억 추정) 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명칭과 달리 스페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미국 캔자스주 외딴 농장에 살던 앨버트 기첼은 H1N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미 육군에 입대한다. 1918년 3월 4일, 열과 두통 증상으로 훈련소 의무실을 찾았던 엘버트 기첼의 증상을 새로운 바이러스로 인지한 군의관은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묵살당했다. 1918년 4월 미군이 프랑스에 상륙하면서 2천만 명이 감염되고 2만 명이 사망했다. 최초 감염에서 40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프랑스 전선에 있던 감염된 영국군을 치료하기 위해 영국으로 이송했지만 영국에도 퍼져 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
스페인 독감은 미국에서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전파된 경우로 일본에서는 약 48만명이 1919년 식민지 조선에서는14만명이 사망했다. 백범 김구도 20일 정도 이 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백범일지’에 있다.
1차 대전 참전국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전쟁 중이라는 것을 빌미로 보도 검열을 했다. 반면 참전국이 아닌 스페인은 이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심각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마드리드 주재 해외 특파원들은 이 기사를 송고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고 이름붙였다. 그들이 감추고 있던 사실을 폭로한 스페인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그때도 기레기는 있었다.
앞으로 교회는 무엇을 할까?
데이비드 쾀멘은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에서 결국 인간이 동물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인수공통 전염병이 발생했다고 본다.
“바로 맞은편에서는 또 다른 여성이 죽은 원숭이들을 팔았다. 몸집이 큰 중년 여성으로 콘로우 머리를 하고, 페이즐리 무늬 드레스 위로 푸줏간용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상냥하면서도 단도직입적인 그녀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훈제된 원숭이 한 마리를 털썩 소리가 나도록 내 앞에 내려놓으며 가격을 불렀다. 원숭이의 얼굴은 아주 조그맣고 일그러져 있었다. 눈은 감긴 채 입술은 바싹 말라 뒤로 당겨져 오싹하게 웃는 것처럼 이빨이 드러나 보였다. 배를 갈라 양쪽으로 벌린 뒤 평평해지도록 눌러 말린 그것은 크기와 모양이 자동차 휠캡과 흡사했다. 6천 프랑이에요. 그녀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주려는 듯 또 한 마리를 들어 옆에 던졌다.”
하지만 개인의 이런 야만적인 행위들만 원인으로 삼을 수 있을까? 개인의 도덕성에 집중하다 보면 생태 파괴의 거대 숙주 역할을 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를 간과할 수 있다. 윌리엄 맥닐은 이런 행위를 ‘거시 기생’이라고 보았다. 바이러스가 사람을 숙주삼는 것이 ‘미시 기생’이다.
교회는 이번 사태에서 교회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냐 아니면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것도 괜찮다는 한가한 논쟁만을 일삼았다. 물론 한국의 경우 신천지 교회가 큰 사고를 저질렀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에게는 도긴개긴으로 보이는 기성 교회들을 항한 비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들의 결정을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는데 그쳐야 했다. 다른 교회까지 간섭하면 안 될 일이었다. 그런 심리에는 “나는 옳은 결정을 했는데 저쪽은 안 했대요. 그러니 혹시 교회가 숙주가 되더라도 우리 교회를 향한 비난은 거두어 주세요”라는 애절한 고자질이 담겨 있다. 미국장로교 PCUSA처럼 예배참석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교단의 방침이 옳았다. 전염의 위협이 큰 대형교회들은 스스로 예배를 접었을 것이고 이 사태 이전부터 소형교회들은 적은 교인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었다. (지금 캘리포니아 주는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이도 불가능해졌지만). 한국(인) 교회들은 서로를 못 믿고 한마디씩 하느라 정말 봐야할 큰 문제를 간과했다.
많은 이들이 이 논쟁에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를 소환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의 예배와 사마리아 지역의 예배 차이가 단지 장소의 차이였을까? 영과 진리라는 말 속에는 장소보다 방법, 주재(主宰) , 형식적 예배의 부재(21절: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등 여러 가지가 담겨 있다. 그렇게 보면 여인의 남편이 다섯이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는 말이 전통적인 해석과 달리 읽힐 수 있다. 여인은 사마리아 율법과는 다른 사실혼 관계에 있는 남자를 남편으로 보지 않았지만 예수는 그 또한 남편으로 본 것이다. 여인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의 남편도 남편이 아닌게 맞다는 말 아닐까? 서로가 좋아서 함께 사는데 형식이 뭐 중요하냐고 예수가 지적하면서 예배도 그런거라며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발칙하게 읽혔다.
정말 놓치고 있는 것
이야기했듯이 바이러스는 없어지지 않고 바이러스가 생존하기 좋은 가장 좋은 숙주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70억 인간은 가장 오래 살아남은 큰 몸집이어서 도통 겸손할 줄을 모른다. 겸손하게 생태계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지자고 교회는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다들 점잖게 혐오와 배제를 문제 삼으면서 교회는 서로를 향하여 혐오의 발언들을 쏟아 내었다. 한쪽에서는 신앙을 이야기 하고 다른 쪽에서는 상식을 이야기 했지만 혐오와 배제의 발언은 ‘상식파’에서 더많이 나왔다. 몇해전 조승희 군의 버지니아텍 총기 난사로 수십명이 사망했을 때 사과를 하고 기도회를 하자며 난리치던 교계 지도자들도 겹쳐졌다. 그들에게 예배의 방법에 대한 신학적 고민은 없었고, 거대 숙주가 되었을 때 돌아올 비난을 미리 두려워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몰론 생명의 위협 앞에서 일부 선택은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과도하게 강조될 때 전체주의로 갈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한국을 본받으라고 했다는 주장에 가려 그의 파이낸셜타임즈 기고문의 진짜 중요한 내용은 전달되지 않았다.
“많은 단기 비상 대책들은 우리 삶에 고착화될 것이다. 그것이 비상사태의 본질이다. 그것은 역사적 과정을 빠르게 한다. 평소에는 몇 년의 숙고가 필요할 수도 있는 결정이 몇 시간 안에 통과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미성숙하고 심지어 위험한 기술도 이용할 수 있다. 모든 국가는 대규모 실험 대상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고 원격으로 의사소통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든 학교가 온라인 수업만 하면 어떻게 될까. 정상적인 시기에는 정부, 기업, 교육위원회가 그런 실험을 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범한 시기가 아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우리는 특별히 중요한 두 가지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의 권한’ 사이의 문제다. 두 번째는 ‘국수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문제다. (중략).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최근 이스라엘 보안국에 테러리스트들과 싸울 때 쓰는 감시 기술을 활용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관련 국회 소위원회가 이 조치의 승인을 거부하자 네타냐후는 ‘비상령’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와 기업들은 사람들을 추적하고, 감시하고, 조종하기 위해 훨씬 더 정교한 기술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최근의 사태는 감시의 역사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그동안 감시 기술 사용을 거부해온 국가에서도 대량 감시 도구를 일상적으로 쓸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을 뿐만 아니라 ‘근접(over the skin) 감시’가 ‘밀착(under the skin) 감시’로 급속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비아단 혹은 빅브라더 같은 것의 문제점을 직시하는 것 만으로도 교회는 존재 가치가 있다. 이 것을 간과하면 오프라인 예배든 온라인 예배든 도긴개긴이다.
그러니 한가한 손가락짓들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