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오르고 내리는 게 문제였다. 멕시코 시티 공항에서 이륙해 사선을 그으며 올라가던 비행기가 갑자기 ‘끼익’소리를 낸다. 경운기 시동 꺼지는 듯한 소리를 이미 들어 버려서일까? 평형을 유지할 때까지 비행기가 무척 힘겨워 보인다. 경사가 심한 언덕을 오르는 과적 트럭에 올라탄 느낌의 비행기는 평형을 유지하자 그런대로 잘 날았다. 2시간 여 비행 뒤 아바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착륙할 때 비행기는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없는 청명한 날씨인데도 비행기는 한참을 뒤뚱거리다가 힘겹게 땅에 닿았다. 승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쿠바항공의 낡은 비행기는 비행은 문제 없지만 새로운 시대로 이륙하고 낯선 체제에 착륙하는 게 쉽지 않다는 쿠바의 현실을 보여주는 예고편 같았다.
쿠바의 화폐는 이원화 되어 있다. 외국인이 쓰는 CUC과 내국인이 쓰는 CUP. CUC은 공식 환전소에서는 미화 100달러당 87~88 CUC으로, 암시장에서서는 93~94CUC으로 바꿔주니 달러보다 가치가 높다. 1CUC은 25CUP이다. 수도 아바나에 있는 혁명박물관 입장료는 8CUC인데 현지인은 8CUP, 얼핏 보면 외국인에게 25배의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지만 사회주의 쿠바가 현지인을 그만큼 우대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 진다. 사실 외국 여행에서 $8 정도의 박물관 입장료는 그리 높은 가격은 아니다. CUP은 원칙적으로는 외국인이 사용할 수 없는데 은행에서 CUC을 CUP으로 환전해 준다. CUP 으로는 길거리 음식 등을 사먹을 수 있다.
쿠바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지시로 만들어 졌다는 국영 아이스크림 가게 코펠리아(Coppelia)가 있다. 아바나에서는 못 찾았었는데 시엔 푸에고라는 지방도시에서 코펠리아를 발견하고 세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가격은 7.5. 우리 일행은 이 돈이 CUC인지 CUP인지 조심스러웠다. 외국인이라고 CUP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7.5 CUP을 내밀었다. 종업원이 아무 말 없이 받아 갔다. 그러면 1인 분에 2.5CUP이니 미화로 15센트 정도라는 말이다.
쿠바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민박(CASA)집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으로도 예약이 가능하지만 버스 터미널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이들을 따라가도 수준은 대개 엇비슷하다. 하루 숙박료는 한 사람 당 10CUC내외.
슬럼가와 같은 거리를 지나 도달한 아바나 민박집은 거리 밖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지만 그렇다고 거리가 위험하다는 말은 아니다. 거리를 밤늦게 돌아다녀도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간혹 chino라며 우리를 호칭했지만 그게 비아냥인지 그냥 ‘ 당신들 중국인이지’ 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관광지에서는 치노가 비하하는 말이겠지만 중국과 쿠바와의 관계가 워낙 각별하기 때문이다.
쿠바의 관광 버스는 모두 중국의 ‘우통객차’에서 싼 값에 제공한 차들이다. 쿠바는 2006년 중국이 지원한 기관차 12대와 대형 버스 1000대를 1500만 달러와 1억 달러에 구입했으며 할부 이자에서도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통객차(宇通客車) 는1993년 중국 하남성에 설립된 자동차 제조업체로 현재 중국 버스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인 작은 어촌 코히마르에서 발견한 거리 낙서 chino te amo(사랑하는 중국인)는 쿠바인의 생각을 반영한다. 아바나의 중국인 타운 입구에는 ‘화인촌’이라는 쓴 거대한 현판이 이곳서부터 중국인 이웃(Barrio Chino)의 동네라고 알려 준다. 하지만 인종간 결혼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쿠바에서조차 ‘독특성’을 유지하는 중국인촌은 다소 거슬렸다. 스페니시를 모르는 상태에서 barrio를 장벽(barrier)으로 알고 씁쓸했지만 다행히 그 뜻은 이웃(neighborhood)이었다.
체게바라와 헤밍웨이, 빼어난 자연 광경이 쿠바의 3대 관광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게바라는 쿠바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진보’와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상징적 존재다. 쿠바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체게바라를 배우며 어느 도시를 가든 거리 곳곳에서 체게바라를 기념한다. 체게바라와 함께 추앙되는 인물은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호세 마르티다.
마르티는 쿠바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사살된 ‘실패한’ 혁명가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실패한 그를 향한 쿠바인의 존경심은 혁명의 가치는 성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쿠바적 공감대’가 느껴졌다. 사실 1967년 볼리비아에서 사살된 체 게바라도 미완의 혁명가다. 쿠바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혁명구호나 혁명 수호 위원회 간판은 아직도 혁명이 미완의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혁명수호 위원회(CDR, Comite de Defensa de Devolucion)는 쿠바의 혁명을 전복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했던 미국의 침략을 물리치면서 조직된 단체다.
쿠바는 지금 혁명 중이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