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氣) ,기독교, 무속, 그리고 젊은 여인과의 심리상담
SK의 최태원 회장은 201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하면서 성경책을 들고 나와 시선을 끌었었다. 앞으로는 기독교인으로 성실히 살겠다고 다짐했던 그가 이번에는 혼외자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아내 노소영씨와 이혼하겠다고 선언했다. 반면 노소영씨는 이혼은 하지 않을 것이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겠다고 밝혔다. 최태원은 첫 번째 구속된 2003년부터 아내의 권유로 기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2004년 경부터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 편지에서 밝힌 여인과의 관계도 이 즈음부터 시작했다. 신앙의 연륜과 불륜의 기간이 거의 같은 셈이다.
지난 2012년 7일 국민일보의 노소영씨 인터뷰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통령의 딸, 재벌기업 회장의 부인, 미디어아트 전문가, 전직 대학교수…노소영(51)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따라다니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수식어가 필요하게 됐다. ‘기도로 믿음의 가족을 일군 크리스천 노소영’.
그가 일군 기독교 가정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재벌 하나 정도는 끼고 있어야 할 보수 기독교계 입장에서는 최회장의 ‘참회 고백’을 받아주면 되는데 ‘독실한’ 노소영씨가 걸린다. 때문에 성공 스토리와 신앙을 연결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기독교계가 ‘회개’까지 덤으로 얻었지만 최태원 마케팅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불교신자였던 부친 노태우 전대통령까지 회심시킨 노소영씨와 부친 고 최종현 회장 때부터 이어져 온 최태원씨의 종교 편력의 ‘내공’이 이혼을 두고 심각하게 부딪히고 있다.
선경 그룹(지금의 SK)의 회장이었던 고 최종현 회장(1929~1998)은 기수련에 심취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독실한’기독교 기업인이 회사 내에 사목(社牧) 을 두는 것처럼 최종현 회장은 회사내에 기전문가를 임원으로 두기도 했었다. 단전호흡과 기수련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회장은 매우 상징적인 존재였다. 대기업 총수가 기독교나 불교 신자가 아니라 기수련 심취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 분야 사람들은 최회장을 통해 ‘기’의 공신력을 확증 받고 싶어 했다. 기수련을 하는 사람들에게 ‘선경 최회장님’은 든든한 사람이었다.
인터넷에는 최종현 회장이 썼다고 하는 기수련에 관한 거의 논문 수준의 글이 있다. 실제로 그의 저술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최회장의 명성에 기댄 ‘외경’수준은 충분히 되어 보이는 글이다.
이 고비에 나는 일생의 동반자를 잃기도 했다. 운명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지만 내게 준비된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이란 욕심대로 가는 것이 아니구나」하는 깨달음도 새삼 가지게 됐다. 지금의 나는 생각지 못했던 폐암 수술로 건강에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그동안 지나치게 건강에 자신감을 가졌던 것이 오히려 불리하 게 작용한 것일까? 그러나 만약 「심기신(心氣身) 수련」을 모르고 오늘까지 왔다면 암이 던진 일격에 쉽게 무너져버리고 말지 않았을 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10년만 더 일찍 기(氣)를 알아 나이 쉰이 되기 전에 수련을 시작했더라면 암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한 가닥 아쉬운 마음도 있다.
이 부분 뒤에는 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오래 전 내가 만나 본 선경의 과장급 임원도 스스로를 ‘기’로 인해 특채된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하면 이 글의 최종현 저작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시계 바늘을 3 여 년 전으로 돌이키면 최태원 회장의 구속에 김원홍이라는 SK 고문이 언론에 등장한다. 최태원 회장은 횡령으로 법정에 섰을 때 그것을 기획한 주범이 김원홍씨였다. 재판 초기 김원홍의 존재에 대해 말을 아꼈던 최태원 회장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법정에서 “김씨와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부끄러워 이제야 진실을 말하게 됐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김원홍씨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명한 ‘무속인’이었다. 그의 신통력은 ‘특정 날짜의 주가를 정확히 맞춘다’고 입소문을 탔다. 1998년 아버지 최종현 회장의 별세 후 그의 가신으로 선경을 맡았던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을 통해 김원홍씨를 소개받은 최태원 회장은 재판 초기에 “김씨는 나의 ‘경영 멘토’였다. 그가 주가·환율, 미 연준 이자율에 정통해 덕분에 나도 열린 시야로 경영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 회장은 자신보다 어린 김씨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었고 그 때문에 고위급 임원들도 감히 ‘김원홍’을 거론 못했다고 전해진다. 김원홍씨는 2008년 10월에는 최 회장 형제와 김원홍, 김준홍씨가 얽힌 450억 횡령사건을 일으킨다. 결국 최 회장은 “실제 SK그룹의 지주회사와 다름없는 SK C&C 지분을 제외한 전 재산을 김씨에게 투자하고 돌려받지 못했다.”(당시 언론보도 요약)
최 회장은 법정에서 “김원홍씨에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김원홍에 심취해 있을 때의 최태원은 아내에 의해 전도 받았다는 시기, 지금 가정을 꾸리겠다는 그 여인과의 관계가 유지되던 때와 겹쳐진다. 그 여인은 최회장이 어려울 때 심리상담을 하던 여인이라고 한다. 재미 칼럼니스트 안치용씨에 따르면 그 여인은 뉴저지 출신의 재미교포 김모씨인데 약력에서 ‘심리 상담’의 교육과정이나 경력은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고통의 세월을 거친 뒤에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기뻐할 일이지만 최회장의 정신적 편력을 보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최회장이 아버지가 몰두했던 ‘기수련’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기와 자신의 무속 신앙과 기독교와 심리상담을 직간접적으로 거친 뒤에 경험한 그의 ‘회심’뒤에는 김장환 목사의 이름도 거론된다. 김장환 목사는 세상이 다 알다시피 전두환 노태우를 위해 기도해 온 인물이다.
무속신앙에 기대어 기업경영을 한 행위, 2년 7개월이나 살 정도(기업의 범죄에 관대한 한국 법의 입장에서 볼 때 기준)의 중죄를 지은 그가 회심으로 인해 정말 거듭났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를 ‘기’와 ‘무속신앙’과 ‘김장환’, 묘령의 여인으로부터의 심리 상담이라는 단어에서 동시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라도 주가의 등락시기를 맞추고 투자 종목을 결정하는데 무속신앙보다는 기독교가 조금 더 믿을만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택한 것이 아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최태원 회장은 소원해진 부부 사이 때문에 외롭던 차에 지금의 여인을 만났다고 하지만 그의 정신적 편력을 보면 외로운 게 아니라 그냥 허한 거다. (을지로)
을지로(乙之怒-을의 분노)는 뉴스B의 공동 필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