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타결과 국정 교과서는 정한론의 징검다리다
201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일본의 문화 유산 23개 중에 한국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대상은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군함도(하시마)로, 태평양전쟁 시기 석탄 채굴을 위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 100명 이상이 숨진 곳이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태평양 전쟁 피해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함도를 포함한 23개 모두가 결국은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쇼카손주쿠(松下村塾)’도 그 가운데 슬그머니 끼어 있었다.
쇼카손주쿠는 정한론(征韓論)을 정교화시킨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후학을 양성했던 사숙 (私塾)이었다. <일본서기>, <하치만구도쿤>(八幡愚童訓)에서 신화의 형태로 전승되어 오던 정한론은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으로부터 통신사를 12회나 초청함으로서 양국의 선린적 관계를 유지했던 도쿠가와 막부시대가 끝난 뒤 메이지 시대에 와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때 이론적 기초를 놓았던 이가 요시다 쇼인이었고 조선 강제 병합의 주범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조선총독부의 첫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타케,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상호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의 가쓰라 다로 등이 요시다 쇼인의 추종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요시다 쇼인의 숭배자인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지난 2014년 요시다 쇼인의 신사에 참배했다. 작은 서당과 같은 사숙을 문화유산에 등재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만 하다.
아베의 고조할아버비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한 일본군 사령관이었고 유명한 외조부 기시 노브스케는 2차 대전의 A급 전범이다. 아베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더불어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서슴지 않고 거명한다. 요시단 쇼인이 사숙을 열었던 조슈번의 하기는 아베의 지역구이자 고향이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이 서양 열강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한국 중국 필리핀까지도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이런 일본의 명문가(?) 출신 아베에게 일개 만주주둔 일본군 초급 장교였던 박정희의 후예가 어떻게 보일지는 자명하다.
아베 신조는 일본 경제 침체에 따른 국민 불만을 우경화 정책으로 덮고 있다. 감히 정한론을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한미일 군사동맹을 앞세워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한반도 상륙 가능이라는 말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다. 한일간의 군사 동맹이 ‘혈맹’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사 정리가 필연적이다. 이번 한일 양국간의 위안부 문제 타결은 그런 점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안착하기 위한 걸림돌 제거라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발표했었다.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를 통하여 정식 사과 성명을 내었고, 1995년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수상이 대아시아 사과 발언(무라야마 담화)을 했고 그 결과 1997년부터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이 문제가 수록되었다.
이에 일본 우익의 반발이 드세지면서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출범했고 그들은 ‘밝은’ 역사를 강조하면서 여론을 주도했고 후소샤 교과서를 펴내고야 만다. 이후 위안부 문제는 여타의 일본 교과서에서 빠지게 된다. 일본 새역사 교과서 논쟁이 시작된 지 18년이 지난 2015년 한국은 ‘새역모’의 ‘밝은 역사’를 ‘긍정의 역사’로 바꾸어 후소샤 교과서 판박이 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
국민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국정 교과서 문제를 몰아간 것에 대해 대부분의 반대자들은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박근혜의 기도(企圖)로 이해했지만 박근혜를 무시하는 진보 진영은 또 속고 말았다. 국정교과서 발행 – 한국 역사 교과서에서 종군위안부 항목 삭제(불가역적 결정이므로 당연히 삭제할 것이다) –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 수순을 통해 한국 땅에서 일본의 과거 만행은 철저히 세탁된다. 세탁된 후의 일본 자위대는 소녀들을 능욕하던 일본군의 후예가 아니라 우리의 ‘혈맹’과 ‘우방’이 되어 유사시 남북전쟁에 개입하고 전쟁 후 자신들의 몫을 내어 놓으라고 할 것이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기 위해서 한일관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미국은 이번 타결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사실상 협상 지휘, 미국 끌어들여 아베 압박’이라는 중앙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 역겨운 이유다.
따라서 이번의 어처구니 없는 ‘타결’은 할머니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할머니들의 문제만이 아니게 되었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생각보다 큰 싸움이라는 말이다.
을지로(乙之怒-을의 분노)는 뉴스B의 공동 필자들입니다.